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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부정공>만송공휘영주묘갈명(晩松公諱永疇墓碣銘)
晚松公諱永疇墓碣銘 余爲龜隱趙公紀其德行於羨門矣其子又有善行可稱肖胤光枓請余銘公玉川人諱永疇初諱甲植字聖範號晚松其源出自高麗大將軍璋傳至玉川府院君元吉諡忠獻享武夷祠是生副正瑜麗亡守義自靖再傳察訪智崙友篤昆季亭築相好三傳梅窓處士大成以校尉隱德不仕與李一齋恒鄭晴莎沼爲友而享曲水院於公爲十一世祖曾祖曰斗采祖曰昌基考曰龍九妣錦山金氏在洋女公以 哲宗己未九月三日生自幼己知事親之道承順無遠冬溫夏清甘旨無闕前後遭艱情文備至每當喪餘哀如袒括進需蠲潔以致如在之誠昆季友篤有春津之樂敎子姪以孝悌之方甞設書齋立師敎導接鄉黨僚友不設畦畛一以忠信篤敬律己益嚴持心益堅於世間名利泊如也以丁丑十一月二十五日卒享年七十九葬于求禮論谷右麓艮坐原配咸陽呉氏錫黙女墓在谷城梧谷面彌山里成積洞負艮原育一男光枓孫男一勲太勲明勲天勲五勲金鍾植房極周孫婿嗚呼若公之懿德至行于何不宜而竟以布諱埋沒巖穴其於命何哉雖然孝友之政立於家忠信之行達于鄉是亦足以不朽於永久矣銘曰 論谷枕艮之原有篤行君子之藏嗚呼千秋萬世兮戒樵牧而勿傷 時癸卯復之下浣 恩津 宋在晟 撰 만송공휘영주묘갈명(晩松公諱永疇墓碣銘) 내가 귀은(龜隱) 조공을 위하여 그 덕행을 훌륭한 문에 기록하였다. 그 아들이 또 착한 행실이 있으면 가히 어진 아들이라고 말하리라. 광두(光枓)가 나에게 명을 청하니 공은 옥천인으로 휘는 영주요, 초휘는 갑식(甲植)이며 자는 성범(聖範)이고 호는 만송인데 그 근원이 고려국 대장군 휘 장(璋)으로부터 드러났다. 三전하여 옥천부원군 휘 원길(元吉)의 시호는 충헌으로 무이사에 배향하였으며 생 휘 부정 유(瑜)는 고려가 망하자 절의를 지켜 스스로 충성하였고 재전하여 찰방 지륜(智崙)은 형제 우애가 독실하여 상호정을 지었으며, 三전하여 매창처사 대성(大成)은 교위로 덕을 숨기고 벼슬을 하지 아니하였으며一齋 李恒과 청사 鄭沼와 더불어 벗이 되어 곡수원에 배향되었으니 공의 十一세 조이다. 증조의 휘는 두채요, 조는 창기(昌基)며 고는 용구(龍九)고 비는 금산 김씨(錦山金氏) 재양(在洋)의 딸이시다. 공이 철종(哲宗) 기미년(己未年一八五九) 九월 三일에 출생하여 어려서부터 이미 어버이 섬길 도리를 알아 이어 순화하여 어김이 없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하고 여름에는 서늘하게 하며 좋은 반찬을 궐함이 없고 전후 초상에 정과 예가 함께 지극하며 매양 제사날을 당하면 초상때 같이 슬퍼하고 제수를 올리며 밝고 조촐히 하여 곁에 계신 것 같은 정성을 다하였다. 형제 우애하여 春津의 즐거움이 있고 자질을 효도하고 공경할 길로 가르치며 일찍 서재를 설치하고 스승을 청하여 교도하며 향당 동료를 만나 마음에 간격을 두지 아니하고 한결같이 충신 독경으로서 몸을 더욱 엄하게 아스리며 마음 가짐을 더욱 굳게하여 세간 명리에 담박하였다. 정축년(丁丑年一九三七) 十一월 二十五일에 향년 七十九세로 별세하시니 求禮 論谷 右麓 艮坐原에 안장하고 부인은 함양 오씨(咸陽呉氏) 석묵(錫黙)의 따님으로 묘소는 곡성 梧谷面 彌山里 成積洞 負艮原이요, 아들은 광두(光枓)며 손자는 일훈(一勲), 태훈(太勲), 명훈(明勲), 천훈(天勲), 오훈(五勲)이고 손녀는 김종식(金鍾植)과 방극주(房極周)의 처이다. 아, 공의 아름다운 덕과 지극한 행의로 무엇이 마땅치 아니하여 마침내 布衣로서 바위 틈에 묻혔으니 그 운명이 어찌된 것인가. 비록 그러나 효도하고 우애한 정사가 집에 있고 충성하고 신의 있는 행실이 고을에 사무쳤으니 이 또한 족히 영구히 썩지 아니할 것이다. 다음과 같이 銘한다. 논곡 간좌원은 論谷枕艮之原 독행 군자의 유택이다 有篤行君子之藏 아, 천추 만세토록 嗚呼千秋萬歲兮 초동 목수는 경계하여 상치 말게 할지어다 戒樵牧而勿傷 은진(恩津) 송재성(宋在晟)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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